나는 왜 펜싱을 하는가 - 처음에는

펜싱이야기 2005/12/10 22:20
어느덧 2년째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만, 최근 1년간은 운동 안 한 시간이 운동한 시간보다 월등히 많아서 시작한지 2년 되었다고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2003년 겨울이었습니다. 집사람은 배가 점점 불룩해지고, 제 배도 따라서 불룩해지기 시작할 때, 이제는 시간을 못내서 우울해하며 7th sea 룰북이나 뒤적거리던 때이기도 하죠. 까스띠예 룰북을 보다보니 갑자기 펜싱이 하고 싶어지더란 말입니다. 이전부터 회사 가까이에 펜싱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미적거리고 있었죠. 정확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12월이 슬금 다가오는 11월 중순경, 언제나처럼의 12월 PT준비로 정신이 해롱거리고 있던 차에 그당시에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 에라군과 ‘30대의 건강관리’ 라던지, ‘인생을 관통하는 취미의 로망’ 등에 대한 시덥지 않은 주절거림이 반복되던 바, 어느 순간 ‘애가 태어나면 끝이다’ 라는 위기감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순처럼 검색->달려가기 과정을 통해 클럽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12월 초였던 것 같습니다. 클럽에 등록하고, 우선 운동화가 마땅한 것이 없어서 운동화부터 장만하고 앙가르드부터 배우기 시작했죠.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펜싱의 기본 자세인 앙가르드는 익숙해지면 편안한 자세(이어야 하)지만 처음 배울 때는 권법의 기마자세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전진/후퇴 동작인 마르세/롬뻬를 한 번 하고 나면 다리가 안움직이기 시작하죠. 물론 폼도 정말 볼품 없습니다. 일단 펜싱복이라도 입으면 뭔가 하는 사람 같을텐데,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펜싱복은 무슨.. 추리닝바지죠. 더더욱 엉성 우울… 게다가 클럽 연습실은 원래 에어로빅 강습장소로 활용되는 곳이어서 3면이 거울입니다. 보기 싫어도 봐야하고, 발전하려면 당연히 자신의 자세를 보면서 연습해야하고… 에라군은 뭐 가볍게 언제나처럼 ‘하기 싫어졌어!’ 로 떨어져 나갑습니다. 저역시 12월 말에 사내 발표 때문에 정신 못차리고 등록 한달간 네 번 정도 밖에 못나갔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고, 어느 사이엔가 칼도 생기고 마스크도 구하고, 옷도 샀습니다. 집사람하고는 62키로로 살을 빼면 펜싱복 비싼 것을 사주겠다! 는 약속도 받아내고 말이죠.

그래도 아직 스스로가 펜서(fencer)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던 때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때 까지는 펜싱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보다는 역시 르네상스 검사의 로망이 펜싱을 시작하게 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삼총사 같은 소설의 주인공, 혹은 조로 같은 wicked hero의 로망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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